나이를 먹고 나니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전과는 달라지는걸 자주 느낍니다.

전에는 책에 쓰여있는게 맞나 보다 그런가 보다 했는데 이제는 책에 써져있는걸

그대로 믿기가 쉽지가 않네요.

사실 조선이 붕당정치가 어쩌구 저쩌구 부패가 어쩌구 저쩌구 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선에 대해 실패한 나라, 망한 나라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죠.

근데 생각해보면 조선이 과연 그렇게까지 실패한 나라일까? 라는 의심을 갖게 됩니다.

조선이 잘했다는게 아니에요.

다른 대부분의 나라들도 사실 별로 잘난게 없고 다 거기서 거기라는거죠.

가끔 특출난 지도자가 나오면 잘나가는거고 당연히 망조든 지도자도 나오는거고

당연히 지들끼리 편갈려서 싸우는거고 매관매직하는거고 부정부패하는거고

조선이 약했던 이유로서 그런걸 가져다 대는건 맞지 않는 것 같다는거죠.

또 조선에 대한 다른 평가로는 성리학 위주 사농공상의 경직된 사회구조

특히 상인들을 가장 경시해서 상업이 발전못하고 어쩌구 저쩌구 하는데

이것도 좀 의심스럽습니다.

상업이 발전못한건 맞는데 이게 과연 죄다 성리학 때문일까요?

나라에서 상업을 장려안했다구요..? 근데 자세히 보다보면 딱히 나라에서

상업을 천시한 적도 없고 나름 뭔가 시도는 이것저것 했단 말이죠..

되려 반대로 상업이 발전을 못했기 때문에 상인계급이 사회적으로 힘을 얻지 못했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가장 밑바닥에 깔린게 아닐까요?

사실 조선이 상업을 경시했다는건 편견에 가깝다고 봅니다.

애초에 조선은 상업이 발전할 수가 없는 나라였어요.

왜냐면 화폐를 만들 수가 없는 나라니까요.

고대 중국와 로마시대부터 시작해서 온세상의 화폐는 당연히 금과 은이었습니다.

주화라는건 금과 은의 양을 측정하기 좋고 위조주화를 가려낼 수 있게 하기 위해

일정한 무게 일정한 크기로 잘 모양내서 주조해놓은 것에 불과하죠.

물론 교환용 소액화폐로 철전도 있기는 했습니다만 축재가능한 재산으로써

가치를 인정받는 것은 금화와 은화뿐이었습니다.

근데 조선.. 아니 고려와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도 이 한반도에서는

금화와 은화가 제대로 만들고 이름붙여져서 유통된 적이 없습니다.

그나마 고려 말기에 은병이라는 이름으로 은화 비슷하게 만들려고 한

시도 정도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외엔 무문전, 즉 아무런 무늬도 없는 동전 모양의 금화가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에 존재했다고는 하는데 이건 단지 금덩어리를 보관과 사용을

조금 더 용이하게 하기 위함이지 제대로 주조되어 화폐로 쓰일 수 있는 

금화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 왜 금화와 은화를 만들 수 없었을까요..?

당연히 이 한반도에서 나오는 금과 은의 생산량이 그만큼이 안되었기

때문이죠... 얼마 안되는 생산량은 외국과의 교역에 전부 다 사용해야만

했구요. 중국에서 물건을 사오려면 은이 아니면 안되었다고 하니까요.

그래서 고려와 조선 역사를 살펴보면 정말 무수하게 많은 이름의

화폐 제조 시도들이 보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종이화폐인 저화도

시도해봤구요. 쌀이나 베를 화폐로 쓰려고도 시도합니다.

하지만 전부 다 실패합니다.

신용화폐는 경제규모가 어느 정도 커지고 신용경제가 성립이 되야

가능한건데 맨처음 시작부터 신용화폐를 가지고 시작하려고 하니

안될 수 밖에요. 은행도 없고 최소한의 화폐가치 안정도 못해주는

판국에 신용화폐라니...

결국 이 땅에서 제대로 된 상업은 오직 무역업 외에는

일어날 수 없었던거죠.

조선이 당시 기준으로 선진적인 정치제도와 통치이념,

그리고 충성스런 백성들과 괜찮은 땅을 가지고도 결국 그렇게

제자리를 맴돌다가 옆나라 일본한테도 역전당해서 그 꼴이

날 수 밖에 없었던건 안타깝게도 국내에 제대로 된 금광과

은광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화폐를 만들 수가 없었고, 화폐가 없으니 애초에

경제 자체가 성립할 수가 없죠. 한마디로 덩치에 비해서

피가 모자랐던 셈입니다.

일본같은 경우 금과 은이야 엄청나게 풍족했죠.

특히 일본이 괜히 개항하고서 그렇게 금방 발전을 해서

서양을 따라갈 수 있던게 아닙니다.

일본에는 이와미 은광이라고 세계 최대 규모의 은광이 있었어요.

이 은광은 딱 일본이 개항할때쯤 발견되었는데

한창때는 전세계 은생산량의 1/3이 여기서 나왔다고 할만큼

엄청난 은광입니다. 아마 누적으로 계산해도 지금까지 인류가

생산한 모든 은의 1/15인가가 여기서 나온걸로 압니다.

사실 일본도 그렇게 은이 많지 않았다면 개항했다한들

외세에 수탈당하기만 하고 제대로 발전하긴 어려웠을겁니다.

저렇게 넘치는 은이 있으니까 그걸로 거래해서

수많은 외국 기술을 사오고, 최신 시설들을 설치하고 할 수 있었던거지요.

우리나라야 금이고 은이고 눈씻고 찾아봐도 없는 나라니까

외국으로부터 뭔가 사오려면 아예 이권을 내주지 않으면 안되었죠.

영국같은 애들이 쌀같은거 준다고 거래해주겠습니까? 아님 인삼?

이렇게 생각해보면 걍 우리나라는 약간 운이 없었을뿐이지

딱히 패배의식에 쩔어 살아야 할 이유가 전혀 없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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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하신 것처럼 여러 가지 이유로 화폐경제가 정착하지 못한 것에는 동의하지만,

    그나마 통용되던 멀쩡한 화폐의 가치를 쌈싸먹은 병크도 없지는 않았습니다.

    액면가만 높고 실제 가치는 없는 당백전이라는 녀석을 대량으로 풀어서 경제위기를 유발했지요.

    그나마 화폐를 활용할 줄 알던 사람들이 죄다 폭삭 망해버렸습니다.

    아마 그 여파가 고종 재위 기간 내내 이어졌을 겁니다. ㅠ

     

    운산 금광 같은 것을 보면 한반도에 금이 아주 없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다만, 서양 기술을 빌리지 않고 채굴하기는 어려웠을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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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난히 패배의식이 많은건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죠.
    서민들의 삶이 어느 한시대 문제 없었던 시대와 나라가 없고, 정치가와 상위계층의 문제가 없었던 시대와 나라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만 그랬고 우리나라 서민만 그랬던 것처럼 우리의 역사를 패배주의 관점에서만 보고 있는거죠. 나라가 바뀔때는 항상 그러한 일이 어느나라에나 있었고 한나라가 다른나라로 바뀌는 시점에 서민들은 대부분 비슷했습니다.
    고려나 조선도 세계 여느나라와 마찬가지로 그런 나라였습니다.

    먼 훗날 대한민국이 통일이 되었든 어쨌든 다른나라로 이름이 바뀐 시점에서 그들이 현시점의 우리들을 보면서 " 아휴.... 대한민국의 서민들은 어찌 살았을까? 정치는 문제가 많고 재벌아래 서민은 착취당하고 집없는 사람은 저리 많고 나라는 둘로 쪼개져서 싸우고 있고...." 등등...
    우리가 고려와 조선을 보면서 하는 말들을 훗날 우리의 후손이 우리에게 하게 될 겁니다.
    하지만 고려나.. 조선이나 그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살아 냈고... 외국에서 보면 분단국에 민주화운동이다 어쩌다 하면서... 어떻게 저 나라 사람들은 저기서 힘들게 살아 왔을까 하는 그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진행형이죠...
    외국에 살다보니 그렇게들 물어보더군요. 우리는 그냥 살았는데...

    결국 좋은 점만 봐도 안되겠지만 무조건 적으로 조선이 나쁘다하는 일부 사람들처럼 나쁜것만 보는것도 문제가 많다고 생각됩니다.
    항상 양면을 다 보려는 그런 시각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것이 바른 역사관을 갖는 방법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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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통치 기간이 500년 그리 웃습게 볼 나라가 아닌데 요즘와선 조선이 만만한 나라로 보이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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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든지 마지막 모습이 기억에 오래 남지요.
    없어진 나라는 망하기 직전의 안타까운 모습이 기억에 남고요.
    백제나 신라나 고려도 망하기 직전에는 모두 추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망했겠죠.
    전성기 때의 아름다운 모습도 잊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네요.
  • ?
    보통 500년 주기로 역사가 반복된다고 하더군요. 흥하는 징조 망하는 징조가 있지 않을까요?
    그나저나 타운은 앞으로 495년은 유지되지 않을까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