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올라왔던 글에 댓글로 남기려다가 생각이 많아져서 이제야 다시 정리해 봅니다.
https://xetown.com/topics/1224318
1. 시장 경제에서 재화의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됩니다.
웹에이전시들이 많이 사용하는 타 보드와 달리, XE는 일반인들이 많이 사용합니다. 웹에이전시에서 만든 사이트를 뜯어고치거나 기능을 추가하려면 웹에이전시에 요청하면 됩니다. 그러나 일반인이 직접 만든 사이트에 기능을 추가하려면 개발이 가능한 사람을 직접 찾아나서야 합니다. 웹에이전시는 사방에 널렸지만, 고품질의 XE 모듈이나 레이아웃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대강 생각해 봐도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드뭅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자료를 판매하고 유지보수하는 것은 무척 귀찮은 일이기 때문에 신규 개발자의 유입도 많지 않습니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니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요.
시장 규모가 커져서 신규 개발자가 유입된다면 이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이 가능할 것입니다. XE3에서 이걸 노리고 있는 듯 하지만 개발자들에게 던져줄 당근이 부족한 상황에서 실현이 가능할지는 미지수...
2. 소프트웨어의 제작 원가(개발 소요시간)를 따지는 것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원가는 최소값일 뿐 (원가보다 싸게 판다면 장사하는 의미가 없잖아요) 최종 결과물의 가격이 원가의 몇% 이내여야 한다거나 원가에 비례해야 한다는 규칙은 없습니다. 개인이 개발하여 판매하는 소프트웨어라면 소요시간이 원가가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한 시간의 가치는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원가를 짐작하기는 무척 어렵습니다. 자투리 시간에 용돈벌이로 개발하는 사람과 XE 자료 제작을 생업으로 여기는 사람에게 한 시간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원가의 개념이 애매한 분야에서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찾아갈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주관적인 가치입니다. 합리적인 구매자라면 이 모듈을 내 사이트에 적용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득(광고료, 편리함, 정신적 만족감 등)이 제작 단가보다 높은 경우 구입을 결정할 것이고, 이득보다 단가가 높은 경우에는 구입하지 않겠지요. 심지어 개발자가 1분만에 써갈겨 놓은 간단한 코드일지라도, 그것을 사용해서 100만원의 이득을 얻을 수 있다면 (or 서버비 등의 고정지출을 100만원 절약할 수 있다면) 그 코드의 가치는 최대 100만원이 될 수 있습니다.
반면, 아무리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만든 자료라도 구매자에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으로 여겨진다면 그 자료의 가치는 0원에 수렴합니다. 0원짜리를 5만원에 팔려고 하면 아무도 사지 않습니다. 그러나 100만원짜리를 50만원에 팔려고 하면 대ㅋ박ㅋ세ㅋ일ㅋ이라며 잘 사갑니다. 최저임금을 청구하는 개발자가 3일 동안 끙끙대며 개발하는 것보다, 최저임금의 10배를 청구하는 개발자가 30분만에 해결하는 것이 더 싸게 칩니다.
특정 CMS의 제작 단가가 평균보다 높거나 낮다면 개발 소요시간의 차이라기보다는 흔히 제작되는 자료들의 평균 가치가 다르기 때문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XE는 일반인도 쉽게 설치할 수 있는 서드파티 자료가 꽤 많습니다. 워드프레스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지만, 타 보드에 비하면 일반인이 접근하기 쉽습니다. 낮은 가치를 가진 자료들은 이미 대부분 무료로 구할 수 있다고 봐도 무리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굳이 돈을 주고 제작하는 자료들은 평균적으로 높은 가치를 가진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입니다.
3. 제작 단가가 아니라 총소유비용(TCO)을 따져봐야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일단 만들어 놓기만 하고 전혀 유지보수되지 않는 사이트가 너무 많습니다. 최초 제작 단가만 생각하고 유지보수 비용은 고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장기간 유지보수되지 않은 사이트는 나중에 뭔가 고쳐보려고 해도 훨씬 어렵고, 해킹 등의 피해를 볼 가능성도 높으며, 내가 직접적으로 피해를 보지 않더라도 내 사이트가 키워드 스팸이나 핑백 등에 악용되어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습니다. 지금 당장 내가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아니지만, 장기적으로는 누군가가 지불해야 하는 비용입니다. 아무도 지불하지 않는다면 결국 개인정보 유출 등 사회적 손실이 되어버립니다.
XE 자료는 타 보드 자료에 비해 제작하기가 까다롭지만, 코어와 깔끔하게 분리되고 일정한 코딩 규칙을 따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유지보수하기가 용이합니다. 몇 년 전에 만든 모듈을 최신 XE에 그대로 올려도 그대로 작동하는 것이 많고, 오류가 있더라도 Object/BaseObject 등 비교적 쉽게 수정할 수 있습니다. 뭔가 특별한 기능이 필요하거나 많이 귀찮은 경우가 아니라면 코어 수정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쿼리, 캐싱, 디버그 정보 출력 기능 등이 중앙에 집중되어 있으므로 성능 튜닝이 필요하더라도 타 보드나 워드프레스 플러그인보다 쉽게 원인을 찾고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코어와 PHP 등을 최신 버전으로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이 타 보드보다 훨씬 적습니다. 사이트 규모가 커짐에 따라 뜯어고쳐야 하는 부분도 훨씬 적습니다.
만약 XE 자료의 제작 단가에 "n년간의 직·간접적인 유지보수 비용"까지 포함하여 생각한다면 절대로 타 보드 자료보다 더 비싸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