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프로그램이 처음 만들어진 날을 정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입니다.

아이디어를 떠올린 날? 코드를 작성하기 시작한 날?

처음으로 제대로 작동하는 버전을 만든 날? 정식버전 출시일?

 

제로님이 "제로보드XE"라는 아이디어를 처음 떠올리신 것이 언제인지는 알 수 없고,

깃허브에 기록된 첫 커밋 날짜는 2007년 2월 6일이지만, 그 때는 깃허브라는 사이트가 있지도 않았으니

svn에 커밋하시기 전에 얼마나 오랫동안 이런저런 실험을 해보셨는지는 몰라요.

XE 1.0.0 정식버전 출시일은 첫 커밋으로부터 1년여가 지난 2008년 2월 28일이었고요.

 

그러나 오픈소스 프로그램이라면 위와 같은 개인적인, 또는 공식적인 마일스톤보다

소스가 공개된 날을 생일로 치는 것이 더 의미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XE가 처음으로 세상에 얼굴을 드러낸 오픈베타 공개일은 2007년 8월 12일입니다.

 

내일이면 꼭 15년이 되는군요.

 

 

xe-beta-release.png

 

 

6개월간 스무 차례 정도 베타버전 업데이트를 거치면서,

구 버전이라곤 하지만 사실상 전혀 다른 프로그램이었던 제로보드4의 보안패치도 종종 나왔습니다.

 

개발 일정이 항상 계획대로 들어맞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웬만한 계획은 공유되었고

피드백이 반영되는 모습이 보이니까 사용자들도 그 불안정하던 시기를 참고 기다려준 것 같네요.

 

 

xe-zeroboard.png

 

 

저도 초창기부터 XE를 사용해 왔지만, 공홈 커뮤니티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한 것은 2014년경입니다.

그 전에 개발 방향이나 포크버전 등에 대해 상당한 논란이 있었던 시기에는 그냥 눈팅만 했네요.

 

비번 암호화 방식 변경 등 보안이나 성능과 관련된 패치, 그리고 서드파티 자료 배포를 종종 하다가

코어 개발팀의 운영 방식이나 커뮤니티 사용자들을 대하는 태도에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수년간 불편하게 느껴 왔는지 뒤늦게 눈치를 채고,

답을 찾기 위해 XEHub를 몇 차례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2015년 여름쯤 되어서는 이거 도저히 노답이다 싶어서

포크버전 개발 및 운영 방향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서

몇몇 분들과 공유하고 의견을 물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비슷한 무렵 XE타운이 생겼고, 코노리님이 XE타운에 쓰려고 만드신 저장소에

XE 개발팀에게 외면받아온 70여개의 PR을 제가 한꺼번에 확 올리면서 라이믹스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름하여 crazymerge! https://github.com/rhymix/rhymix/pull/2/commits

 

 

xe-crazymerge.png

 

 

거창하게 파생 XE를 만들겠다는 건 아니라고 하셨는데;;;

저 때문에 일이 커져버렸지요. ㅋㅋㅋㅋㅋ

 

XE와 함께한 15년이라고 썼지만, 사실 지난 3년 정도는 XE를 써본 적도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라이믹스에 익숙해져서 XE는 개발이나 디버깅이나 다 너무 불편해요.

코어 개발자가 아닌 서드파티 개발자 입장에서 봐도 아주 옛날 XE 1.4~1.5 시절과 XE 1.11.6의 차이보다

XE와 라이믹스의 차이가 훨씬 더 크거든요.

 

 

xe-rhymix-home.png.jpg

 

(이제 보니 라이믹스 공홈의 색상 조합이 제로보드XE와 은근 비슷하네요. 차콜+레드 ㅎㅎ)

 

 


 

 

적대적으로 포크하여 대립각을 세운 외국의 몇몇 사례들과는 달리,

라이믹스는 XE 개발팀과 웬만하면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보안패치도 공유하고, XECon에도 참석하고, 여럿이 XEHub에 찾아가서 담소를 나누기도 했고요.

그러나 어디까지나 XE1과 관련된 부분에서 그랬고,

XE3(엑스이 삼? 엑스이 쓰리?)는 저도 솔직히 아웃오브안중입니다. ㅎㅎ

XE1 개발이 중단됨에 따라 지난 3년간 XEHub와의 교류도 자연스럽게 끊겼습니다.

 

행여나 XE3의 브랜드가치에 해가 될까 봐 개발 중단이라는 공지도 못 올리는 그 개발팀,

제로님처럼 "제로보드에는 취약점이 있으니 쓰지 말고 XE로 넘어오세요"라는 말을 할 줄도 모르는 소인배들,

그렇다고 패치하기 싫다는 것도 아니고, 뭔가 할 듯한 제스쳐는 취하지만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말일 뿐

그 말을 뒷받침할 어떤 유의미한 행동도 취하지 않는 그 답답한 개발팀 말입니다.
 

라이믹스 없이 XE만 알았던 시간보다

라이믹스라는 대안을 만들어온 시간이 더 길어지려 하는 이제,

XE는 그만 놓아주려고 합니다.

 

더이상 XE 개발팀과 보안취약점 정보를 공유하거나 패치 일정을 사전통보하지 않겠습니다.

차라리 인터넷진흥원 보안취약점 DB에 올리는 편이 더 효과적일 것 같네요.

 

더이상 XE 공홈에 자료를 배포하지 않겠습니다.

이미 배포한 것은 삭제하겠습니다. 앞으로는 깃허브에서 zip으로 받아가세요. 그런데 삭제 기능이 없네요 ㅠ

 

더이상 라이믹스와 XE를 묶어 RXE라고 부르지 않겠습니다.

제네시스를 현기차라고 부르면 섭섭하잖아요.

 

XE로 만들어진 사이트들이 이 세상에서 모두 사라지려면 15년은 더 걸릴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오랫동안 독보적인 인지도를 누려왔으니까요.

일부는 세월의 변화에 따라 사라지고, 일부는 해킹당해서 망하고,

일부는 라이믹스나 그 밖의 다른 CMS 또는 프레임워크로 리뉴얼되겠지요.

모두 라이믹스로 넘어오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15년 후에 라이믹스가 아직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는걸요.

하지만, 버릴 것은 버리고 가볍게 가야지요.

 

 


 

 

15년간 취미와 생업을 함께해 온 XE, 그리고 "XE 파생 CMS"로서의 라이믹스를 떠나보내며,

XE 파생 CMS가 아닌 독립적인 프로젝트로서의 라이믹스 15년을 기대하며

15년 묵었다는 술을 구해서 건배 한 잔 올립니다.

 

제가 처음이자 마지막 XE타운에 올리는 19금? 게시물이 될 것 같네요.

 

예전에 XEHub에서 받은 2개의 감사패가 얼음과 나름 깔맞춤이 되었어요. ㅋㅋㅋ

아직 주말이 아니라서 한 잔만 하겠습니다.^^

 

 

xe-15-years.jpg

[XE 15주년 기념 건배]

“The king is dead. Long live the king!”

 

예전에 서양에서는 왕이 세상을 떠나면 백성들에게 이렇게 발표했다고 합니다.

왕께서 승하하셨다. 왕이여 만수무강하소서!

방금 죽은 사람한테 만수무강하라니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싶겠지만,

첫 문장의 왕은 죽은 왕이고, 두 번째 문장의 왕은 새 왕을 뜻한답니다.

 

 

생각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계획을 공유하셨던 제로님을 본받아서 천기누설 조금 하겠습니다.

라이믹스 활성화를 위한 공모전을 구상중입니다.^^

상품 수준은 예전 XE 공모전 대비 절대 부족하지 않도록 제공할 자신 있어요.

문제는... 코어에서 지원하는 새로운 모듈 구조 안정화, 매뉴얼 정비 등

먼저 해야 할 일이 꽤 많네요. 제가 너무 바쁘고 피곤해서 아마 내년에나 가능할 것 같아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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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진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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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tHub @kijin 사람을 위한 인터넷 생태계의 발전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만들어 가는 XE의 새 이름, 라이믹스(Rhymix)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오픈소스 도로명주소 검색서버 및 API Postcodify를 개발, 운영중입니다.
국내외 서버 및 클라우드서버 세팅, 이전, 튜닝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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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XE3의 브랜드가치에 해가 될까봐 지원중단을 발표하지 못한다고 볼수도 없는것이 XE3 이미지는 불통으로 완전히 박살내고 있죠. 뭘 의도한건지 도무지 알 수 없을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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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인정하는 바 입니다.

    그마저도 xe3에 올라오는 유료관련 부분도 대응이 많이 늦은걸봐서는 XE관련 이름을 가지고 있을 생각만 있으신건지.. 의구심이 마구마구 든단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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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뮤니티 사용자들이나 자잘한 개발을 의뢰할 만한 사람들이 주 고객층이 아니라고 가정하면 됩니다. 세상은 넓고 SI 업계에는 다양한 클라이언트들이 있으니까요.

     

    커뮤니티에서 오래 활동하다 보면 커뮤니티의 논리로만 생각하기 쉬운데, SI 업계의 논리는 달라요. 마음에 들지 않을 수는 있겠지만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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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ㅠ ㅠ 그렇죠..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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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로보드부터 XE1 그리고 라이믹스까지 저도 사용자로서 함께 한 세월이 기네요.
    웹 디자이너에서 조금도 더 나아가지 못해 별 도움도 못되는 사용자이지만
    개발자분들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라이믹스 활성화를 위한 공모전에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더 발전된 독립적인 라이믹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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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8월에 나는 뭘 하고 있었나 찾다보니까 어느나라 연안을 자동차 여행중이었군요.

    사진이 있네요~ 15년 진짜 후딱 지나네요.

    제로보드에서 XE를 거쳐 라이믹스까지...
    15년째 남이 운전하는 버스를 얻어타고 다니고 있습니다.
    웹은 취미로만 하는 것이라 기여할수 있는것이 없어 항상 미안해 하고 있습니다.
    공모전 멋진 생각입니다. 누군가는 나서서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줄 필요가 있죠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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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이팅!
  • ?
    일 한두명 방문하는 작은사이트부터, 제가 알고있는 동접이 몇십만 되는 사이트까지 라이믹스 개발자분들 노고없이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했을까 싶습니다 항상 감사히 잘 이용합니다
    글도 정말 잘쓰셔서 읽으면서 제가 도움된 부분은 하나도 없는데 감히 울컥했습니다 ㅠ
  • profile
    이런 역사가 있었군요. 왠지 나무위키에 반영될 듯합니다ㅎㅎㅎ
    코어 개발진님들, 언제나 감사해요!
  • ?
    하나의 글에 알아가고 배워가는게 대체 몇가지 인가... 늘 놀랍습니다.
    그리고 해당 역사를 90% 이상은 직접 눈으로 지켜본 유저로서 다시 한번 옳은 결정에 박수 치고 갑니다.~
  • ?
    제로보드 XE 0.1.0 시절이 벌써 이렇게나 흘렀군요. 캡쳐한 이미지에 제 닉네임이 보이니 감회가 새롭네요.
    그 시절엔 참 열심히 활동을 했던 것 같은데.
    사투리로 열심히 매뉴얼 영상 만들어 올리고, 회원분들과 소통하고.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 인지 열정이 많이 식네요. 라이믹스 관련 영상도 한번 만들어 올리면 좋겠다는 생각만 늘 하고 있고.

    XE가 흐지부지 되던 찰라 라이믹스가 나와줘서 참 다행이라 생각을 하고 늘 감사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저는 XE도 늘 감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긴 합니다.

    라이믹스가 계속 발전해서 20년 뒤, 30년 뒤에도 이 글이 다시 회자 되었음 좋겠네요.

    라이믹스 개발 및 운영에 늘 진심인 개발자 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 profile
    역사공부를 한 기분입니다 ㅎㅎ
    저는 처음접한게 라이믹스였는데 항상 유지보수 해주셔서 감사한 마음으로 잘 사용중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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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로보드 때부터 이것저것 설치해보는게 취미인데
    라이믹스로 넘어오면서 버그가 잘 안나서(?) 슬퍼요~
  • profile ?
    그누보드 버그ㄷ
  • profile
    옛날 Xe official site 흔적들...
    https://web.archive.org/web/20081219121429/http://www.zeroboard.com/
    https://web.archive.org/web/20110718133931/http://www.xpressengine.com/
    https://web.archive.org/web/20140625064257/http://www.xpressengine.com/
  • ?
    xe가 아닌 그누보드가 바뀌었다면 지금쯤 어떤모습일지도 궁금하네요 ㅋㅋ

    그누보드는 정말..ㄷ
  • profile
    사용자로서 노고에 경의를 표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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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진곰님! 파이팅!!
    라이믹스가 잘 되기 바라구요.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 항상 건강 조심하고
    몸 아픈데 없이 잘 지내셨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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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이 닿는 데까지 팔로우 하겠습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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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역사가 있었군요;;
    xe 초창기 부터 감사하게 사용하고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xe의 업데이트가 없어져 이상하게 생각했어요 xe에서 라이믹스로의 환골탈태에 이런 타임캡슐이 있었네요 모든분들 정말 감사드립니다
  • profile
    파이팅!!
  • ?
    응원합니다.
  • profile
    먼저 축하드립니다. 늘 운영진분들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타운에 오는데 아직 초보단계를 못 벗어나고 있어 눈팅만 하고 있어요ㅠㅠ.
    xe/rhymix 역사를 한눈에 알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인터넷진흥원도 처음 알게 되었어요 감사드립니다.
    중년을 지나다보니 생의 중요한 부분이 젊었을 때와 좀 달라지는 것 같아요.
    건강이 제일인 것 같고, 지난날 되돌아봤을 때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나 자신이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늘 건강하시고 라이믹스가 천수,만수하길 기원드립니다.
  • ?
    어릴때 제로보드(4)로 홈페이지 만들기 라는 책으로 처음 웹에 입문한게 기억나네요
    하도 어릴때라 해킹이란게 멋져 보였을때 제로보드 취약점 이용한 wargame도 해보고,, 제로보드4 취약점이 엄청 많았던거 같은...

    라이믹스가 그래도 php CMS 중에는 가장 코드가 모던하고 관리 잘 되고있는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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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로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