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공홈에 올라온 "XE의 미래는 아무도 모릅니다"라는 글을 읽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네, XE의 미래는 불확실합니다. 방배동 XEHub에 상주한다는 공식 개발팀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이 없고, 연말연시라는 점을 감안해도 XE 1.8.15 이후 버전은 전혀 만들 것 같지 않은 분위기입니다. 보안 취약점이라도 나타나야 부랴부랴 패치하려나요?

 

(여기서 XE3는 그냥 무시하도록 하겠습니다. 거기도 뭘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을뿐더러, 인도를 얘기하는데 인도네시아를 들먹일 필요는 없으니까요.)

 

XE를 오랫동안 지켜와 보신 분이라면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오리라는 것을 이미 짐작하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XE는 이미 약 3년 전부터 산소호흡기를 매달고 있었거든요. 2013년에는 몇 달이나 개발이 중단되기도 했습니다. 미솔님이 누리CMS 프로젝트를 통해 자극을 주지 않았다면 거기서 그대로 끝났을지도 몰라요. 그나마 개발이 재개된 덕분에 1.7.4 업데이트가 되었고, 작년에는 꽤 굵직한 패치들이 포함된 1.8 버전도 나왔습니다. 그러나 1.8이 어느 정도 안정되자 개발팀은 또다시 관심을 돌려 버렸죠. 이제는 XE3이라는 새로운 장난감이 나왔으니 오래된 장난감에는 그저 먼지만 쌓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2013년 이후 바뀐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소스코드가 github으로 옮겨진 것입니다. 오픈소스라고는 해도 아무나 고쳐쓰기 힘들던 svn 시절과 달리, git은 프로젝트에 정식으로 참여하지 않던 사람도 쉽게 fork를 클릭해서 이런저런 패치를 만들어 보고, 자기가 만든 패치를 원래 개발팀이나 다른 사용자들과 쉽게 공유할 수 있습니다. 프로그래밍을 하지 않는 분들에게는 여전히 다른 세상 얘기일지 모르지만, 개발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겐 엄청난 차이입니다.

 

둘째는 XE타운이 생긴 것입니다. 예전에도 XE 커뮤니티를 표방하며 만들었다 흐지부지된 사이트는 여럿 있었지만, XE타운은 공홈 운영진이 사용자 커뮤니티 운영에 절대로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난 후에 생겨났기 때문에 아예 공홈을 포기하고 XE타운으로 옮기는 사용자들이 크게 늘어났습니다. 더이상 공홈 운영진에게 커뮤니티에 신경써 달라고 부탁할 필요도 없고, 신경써 주지 않는다고 섭섭해할 필요도 없게 되었습니다. 남이 만들어 주지 않는다면 내가 만들어 운영하면 그만이니까요. 원래 XE는 그런 거 만들라고 있는 거잖아요?

 

이 마지막 포인트가 핵심입니다.

 

남이 만들어 주지 않더라도 내가 만들면 그만이라는 겁니다.

 

원래 오픈소스는 그러라고 있는 거라고요.

 

저를 포함한 몇몇 개발자들이 얼마 전부터 XE를 가지치기(fork)하여 RhymiX(라이믹스)라는 CMS를 만들고 있습니다. "시를 짓다, 운을 맞추다"라는 의미의 "rhyme"과 "조합하다, 변주하다"라는 의미의 "remix"를 합친 것으로, 인터넷 공간에서 글을 쓰고 다양한 콘텐츠를 생성하고 오픈소스 자료들을 자유롭게 조합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 가는 사용자 여러분을 응원하는 이름입니다.

 

그러나 저희도 아직 XE의 미래는 모릅니다.

 

어떤 방향으로 진행할지 아직 분명히 결정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기존의 XE나 옆동네 XE3와 무엇을 차별화할 것인지, 지속적인 운영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은 어떻게 충당할 것인지, 무엇이 우리 프로젝트의 핵심 가치이고 무엇을 과감히 버려야 하는지 충분히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패치만 거듭하다가는 아무도 원하지 않는 곳으로 가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네이버가 아직 버리지도 놓아주지도 않고 있는 XE와의 관계도 생각해야 하고, 안 그래도 힘드신 서드파티 자료와 레이아웃 개발자분들도 배려해 드려야 하고, 어제 XE타운에서 화제가 되었던 자료실 및 저작권 문제도 풀어야 하고, 자료실 얘기가 나온 김에 기존의 개발팀이 편한 대로 정해놓은 "코어" 개발자와 "서드파티" 개발자의 관계도 다시 생각해 봐야 합니다. Fork는 아무나 할 수 있지만 성공하는 예는 드뭅니다. 패치는 누구나 작성할 수 있지만, 정리가 되지 않으면 무질서를 낳을 뿐입니다.

 

그래서 다른 개발자분들도 함부로 초청하지 않고, 아직 충분히 안정적이지 않기 때문에 일반 사용자분들께도 대대적으로 광고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깃허브 오른쪽 위의 "Download ZIP" 단추를 클릭하거나 git으로 다운받으셔서 테스트용 사이트에 써보시는 것도 환영하고, 정말 이것만은 내가 책임지고 개선해 보고 싶은 부분이 있다! 하는 개발자분들의 Contributor 신청도 환영하며, 그냥 아이디어 제안도 환영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사소한 제안보다는 큰 그림을 그려야 할 때라는 것을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소한 제안은 나중에 시간만 있으면 얼마든지 들어 드릴 수 있지만, 큰 그림은 여러 사람의 의견을 모두 반영하기도 힘들고 잘못 그려 놓으면 나중에 바꾸기도 힘드니까요.

 

제가 몇몇 분들께 fork 제안을 드린 지도 벌써 반 년이 다 되어 갑니다. 제가 아직 망설이는 사이 과감하게 먼저 fork를 클릭하신 코노리님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미솔님은 이미 한 차례 전과(?)가 있으시죠. 이제야 그 결과가 조금씩 겉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 뿐입니다. 누구보다도 XE를 더 걱정하고 RhymiX를 위해 많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신중한 결정을 위해서는 몇 주 더 기다려야 할 수도 있습니다. 다른 분들도 함께 고민해 주시면 힘이 되겠습니다.

 

우리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다면 충분합니다. 더이상 우리의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제3자의 결정, 또는 그 결정의 부재에 고민하지 마세요. XE를 사용하는 여러분은 이미 다른 누군가의 SNS 서비스를 소비하기만 하는 대부분의 네티즌들과는 다른 차원에 살고 계십니다. 나도 생산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니까요.

 

올 봄에는 대한독립만세뿐 아니라 XE 사용자들도 독립만세 한번 해봅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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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진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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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tHub @kijin 사람을 위한 인터넷 생태계의 발전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만들어 가는 XE의 새 이름, 라이믹스(Rhymix)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오픈소스 도로명주소 검색서버 및 API Postcodify를 개발, 운영중입니다.
국내외 서버 및 클라우드서버 세팅, 이전, 튜닝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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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XE 를 아껴주시고, 체계적으로 이끌어주실 수 있는 기진곰님과 같은 분들이 지금과 같이 XE 를 이끌어 주신다면 분명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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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하게 XE 미래는 XE TOWN뿐 이라고 생각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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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XE Town = XE 미래" 가 성립되는 군요. 좋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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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보드를 한글로 놓고 town을 치면 '새주'라고 나와요. 여기가 XE의 새 주인입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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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거 공감잼..
  • profile ?
    아이코 ㅋㅋㅋ 새주 맞네요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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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ㅋㅋㅋ 화이팅~ 저는 떡고물이나 ..... 굽신굽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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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G님이 수익사업을 좀 해주셔야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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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걸 원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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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독하고 끄덕끄덕하고 갑니다.`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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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ordpress 를 넘을 수 있는 RhymiX가 되길 응원합니다.
  • ?

    술술술 읽혀 내려 가는 글.... 지난 몇년이 정리가 됩니다.  마지막으로 저도 독립 만세를 외치고 싶습니다.

     

  • ?
    추천 드리고 갑니다. 개발자와 사용자 모두 소통하고, 화합하는 커뮤니티는 XE 커뮤니티 중에선 여기밖에 없을 듯 싶고.. 그렇기 때문에 XETOWN이 훗날 XE의 미래가 될 수 있다 생각해봅니다. (윗분도 말씀해주셨지만.. ^^)
  • ?
    "인도를 얘기하는데 인도네시아를 들먹일 필요는 없으니까요."

    이 부분 엄청 맘에 드네요. 촌철살인급인듯 합니다
  • ? profile
    제가 쓴 게 아니라 예전에 다른 분이 그런 명언을 하셨습니다. 지난번 XECon 직후의 댓글들 중에 있을 거예요.
  • ?
    어울렁 더울렁
    바람불면 바람부는데로... ^^
  • ?
    XE가 이런식으로 올해도 가면 사실상 독립해야죠..
  • ? profile
    라이믹스가 답입니다! ㅋㄷㅋㄷ 카이네드님도 라이믹스 입주하세요~ (물론 버그는 아직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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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멋지십니다.. +_+ 여러 개발자님들의 노고에 찬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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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XE 처음 시작할때 정말 고마운분들께 많은 도움받았습니다. 나열 할수조차 없습니다...
    너무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제 이곳에서 반가운 일들이 많이 일어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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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대합니다! 굿.
  • ?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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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용자가 원하는 !
    패치가 이루어지는 라이믹스 코어가 됬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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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바빠서, XE 사이트도 제대로 못들어와보고 있었는데, 이렇게 진행하시는 분들이 있네요.
    저도 한손 도와드릴수 있는게 있다면 도와드릴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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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 fork 프로젝트 때도 은동님이 여러 가지 중요한 조언을 해주셨었다고 들었습니다. 이번에도 많은 도움 부탁드립니다.
  • ?

    분명 글을 봐도 몇번은 봤을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정도 글에 아무런 반응이 없으니 이는 카톡을 읽고도 답장이 없는 것과 같다고 봅니다.